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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리프트 8화 사냥개 #02 본문

넉두리, 번뇌/Play Book

크로노리프트 8화 사냥개 #02

가온아 2026. 4. 30. 11:00

 


다음 날.

카엘은 리온을 불렀다. 주막 1층. 아침 햇살이 작은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먼지가 빛 속에서 떠다녔다. 리온이 나무 탁자에 앉아 마른 과일을 씹고 있었다. 아침부터.

"볼턴 교수랑 엘시는 레칸에 남겨. 치료가 먼저야. 하르만 박사도."

"넬은?"

"넬이랑 나. 하크라드로 먼저 간다."

리온의 과일 씹는 소리가 멈췄다. 금색 눈이 카엘을 봤다.

"왜 나는 빼?"

"하크라드에서 정보가 필요해. 발렌이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아렌이라는 여자가 뭔지. 코벤이 살아 돌아갔는지."

리온의 금색 눈이 반짝였다. 정보상의 눈.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두드려졌다.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내 일이지."

"그래."

"근데 왜 넬이 같이 가?"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과일 하나를 입에 던졌다. 과장된 한숨이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정보만 캐고, 넌 또 뛰어다니겠다?"

"원래 그렇잖아."

리온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금색 눈이 가늘어졌다. 5년간 반복된 패턴.

"금화 500은 언제 받아?"

"살아 있으면."

카엘은 검집을 허리에 매고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마루가 삐걱거렸다.

엘시가 주막 1층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로브가 갈아입은 것이었다. 마을에서 빌린 모양이었다. 크기가 맞지 않아 소매가 손목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 소매 아래에서 양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고 있었다.

"가세요?"

"그래."

"하크라드까지 이틀이죠?"

"그래."

"조심하세요."

카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카엘 씨."

카엘이 멈췄다.

"라벤라, 향 나요?"

"……나."

"다행이다."

엘시가 웃었다. 어제 밤 복도에서와 같은 웃음. 아침 햇살 속에서 주근깨가 선명했다.

카엘은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레칸의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건조하고 서늘한. 균열지대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바람. 넬이 주막 앞에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다가 카엘을 보자 팔을 풀었다.

"가자."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남쪽으로 걸었다. 하크라드를 향해. 흙길이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다. 부츠가 흙을 밟을 때마다 찍히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울렸다. 넬은 말이 없었다. 카엘도. 넬과 걷는 건 편했다. 대화가 필요 없었다. 넬은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남자가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모르는 남자였다.

카엘의 왼손이 맥박쳤다. 유적이 없어도. 결정이 없어도. 아렌이 없어도.

혼자서. 멈추지 않고.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

하크라드 어딘가.

어두운 방. 촛불 하나. 불꽃이 벽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방이 좁았다. 탁자 하나, 의자 둘. 창문이 없었다. 환기구가 천장 구석에 하나. 바깥의 공기보다 안의 공기가 더 무거웠다. 습기와 촛불 그을음.

코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외투가 반쯤 찢어져 있었다. 오른쪽 어깨의 솔기가 뜯어져 안감이 보였다. 왼쪽 손등에 화상 자국. 안경테가 휘어져 있어서 한쪽이 얼굴에서 들떠 있었다. 살아 있었다. 카엘이 말한 대로. 그런 놈은 안 죽는다.

서류 가방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가죽 가방의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무너지는 통로에서, 볼턴을 두고 뛰면서까지,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가방. 코벤의 손가락이 가방의 잠금쇠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확인.

맞은편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깔끔하게 다림질된 군복. 가죽 장갑. 칼 자루를 쥔 적 없는 손. 등이 곧고 턱이 들려 있었다. 발렌의 부관, 마르쿠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르쿠스가 말했다. 사무적인 톤. 코벤의 상태에 관심이 없었다. 찢어진 외투도, 화상 자국도, 휘어진 안경도 마르쿠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코벤이 서류 가방을 열었다. 잠금쇠가 째깍 소리를 냈다. 양피지 묶음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양피지가 눅눅했다. 유적 안의 습기가 배어 있었다. 가장자리가 약간 곱슬거렸다. 글씨는 읽을 수 있었다.

"보고서입니다."

"구두로 먼저."

"유적은 실재했습니다. 그리고 카엘이라는 용병에게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마나가 아닌. 정체는 모르겠습니다."

코벤의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정중하고 부드러운. 안경 너머의 눈이 마르쿠스의 반응을 읽고 있었다.

마르쿠스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관심이 생긴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이라는 단어에.

"아렌이 보고한 것과 일치하는군요."

코벤의 손이 멈췄다. 양피지를 정리하던 손가락이. 0.5초.

"아렌이 먼저 보고했습니까?"

"아렌은 한 달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코벤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멈췄다. 0.5초. 곧 풀렸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코벤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정중하고 부드러운. 탁자 아래에서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있었다.

아렌이 먼저였다. 코벤이 유적에서 목숨을 걸고 얻은 정보를, 아렌은 수정구 하나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코벤이 볼턴을 버리고, 무너지는 통로를 달리고,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지킨 보고서. 그 보고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주님께서 카엘을 원하십니다."

마르쿠스가 말했다. 감정 없이.

"……어떤 방식으로?"

"그건 영주님이 직접 말씀하실 겁니다."

마르쿠스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가죽 장갑을 낀 손이 군복의 단추를 정리했다. 이 남자에게 코벤은 정보를 받는 창구에 불과했다.

"내일 아침. 영주님의 집무실로."

문이 닫혔다. 마르쿠스의 발소리가 복도를 지나 사라졌다.

코벤은 혼자 남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환기구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서류 가방을 봤다. 무릎 위의 가죽 가방. 가방 안에는 양피지가 있었다. 석문의 구조. 카엘의 반응. 결정의 위치. 분리 기제의 작동 방식. 전부 꼼꼼하게 기록한 것들.

쓸모가 없어졌다.

아렌이라는 여자가 수정구 하나로 이미 해낸 일을, 코벤은 목숨을 걸고 해냈다. 같은 결론에 다른 경로로 도착한 것이다. 먼저 도착한 쪽이 이기는 것이 발렌의 세계였다.

코벤은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웃음이라기보다 얼굴의 경련에 가까웠다.

촛불이 꺼졌다. 환기구에서 들어온 바람이 마지막 불꽃을 날려버렸다. 어둠이 방을 채웠다. 코벤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촛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