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자, 하늘.
크로노리프트 9화 돌아온 자리 #02 본문
리온은 다음 날 저녁에 왔다.
검은 종 여관 2층. 카엘의 방. 문을 두드리기 전에 특유의 노크가 왔다. 세 번. 짧게-짧게-길게. 리온이 자기를 알리는 방식이었다. 5년 전부터 바뀌지 않은 신호.
문을 열자 리온이 후드를 벗으며 들어왔다. 검은 후드 아래에서 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반엘프 특유의 가늘고 긴 귀가 후드에서 빠져나왔다. 가죽 배낭을 의자 옆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마른 과일을 꺼내 입에 넣었다. 씹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하지만 리온의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두드려졌다. 돈 얘기가 아니다. 위험한 얘기.
"빠르게 갈게."
"그래."
"하나. 코벤은 살아서 돌아왔어. 이틀 전. 발렌에게 보고를 마쳤어."
"예상했어."
코벤이라면 살아남는다. 유적이 무너질 때도 서류 가방을 놓지 않은 남자다. 살아남아서 보고하는 것까지가 그 남자의 임무였다. 코벤은 그런 인간이었다. 정중한 목소리로 사람을 재단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가치를 매기는. 유적에서 카엘을 봤을 때 코벤의 눈이 변하는 걸 봤다. 용병을 보는 눈에서 자산을 보는 눈으로.
"둘. 발렌이 움직이고 있어. 카엘이라는 이름은 안 걸었지만, '은색 머리카락의 독립 용병'으로 수배 비슷한 걸 돌리고 있어. 현상금이 아니라 초빙금."
"도리안한테 들었어."
리온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리안이 왔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었다. 리온이 모르는 사이에 도리안이 왔다는 건, 도리안이 정보망을 피해서 왔다는 뜻이었다. 잿빛 여단 부단장이 정보상의 감시를 피해 움직일 줄 안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도리안도 전장에서 구른 사람이니까.
"셋."
리온의 손가락이 멈췄다.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주먹 안으로 접혔다.
"아렌이라는 여자. 발렌의 특무관인 건 맞아.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어."
"뭔데."
"기록이 없어."
"뭐?"
"칼레온 영지의 관료 명부, 군적부, 세금 기록. 전부 뒤져봤어. 아렌이라는 이름이 없어. 특무관이라는 직함도 공식 기록에 존재하지 않아."
리온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평소의 리온이라면 "기록을 뒤지는 데 금화 5가 들었다"거나 "기록 관리소 서기가 술을 네 잔이나 먹어야 입을 열었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그런 여유가 없다는 건, 이 정보가 리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카엘의 눈이 좁아졌다.
"유령이야?"
"유령이거나, 발렌이 의도적으로 지운 거야. 어느 쪽이든 보통이 아니야."
카엘은 창밖을 봤다. 하크라드의 밤. 굴뚝 연기 너머로 별이 몇 개 보였다. 아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짧은 흑발. 창백한 피부. 어두운 갈색 눈. 감정을 삭제한 목소리. 하지만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해 말할 때, 처음으로 단정이 빠졌던 그 목소리.
"……레칸에서 만났을 때, 내 왼손이 반응했어."
리온이 카엘을 봤다. 금색 눈이 좁아졌다.
"이유는 모르겠어. 유적 밖에서 저렇게 강하게 반응한 건 처음이었어."
"그 여자가 뭔가 가지고 있다는 거야?"
"모르겠어. 본인도 모른다고 했어."
"믿어?"
카엘은 잠깐 생각했다. 아렌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확신이 아닌 목소리. 모르는 것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 연기가 아니었다. 연기라면 더 확신에 찬 말을 했을 것이다. 모르는 척하면서도 확실한 것처럼 말하는 게 속이는 사람의 방식이다. 아렌은 반대였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모른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진짜였어."
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넷."
"더 있어?"
"칼레온 영지의 남쪽 관문이 내일부터 검문을 강화해. 은색 머리카락의 용병을 찾는 검문이야. 영지를 나가려면 내일 새벽 전에 나가야 해."
침묵이 흘렀다. 탁자 위에 놓인 도리안의 빈 에일 잔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의 잔을 치우지 않았다.
리온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금색 눈이 카엘을 정면으로 봤다.
"시간이 없어."
카엘은 일어섰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넬한테 전해. 새벽에 출발한다고."
"어디로?"
"노르비스 국경. 거기서 넘어간다."
"노르비스에서 뭘 할 건데?"
카엘은 창밖을 봤다. 하크라드의 밤. 굴뚝 연기. 대장간 불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하부 도시의 골목에서 취한 용병의 노랫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3년을 보낸 도시. 세라가 죽은 후 관성으로 살아온 도시. 여기서 3년간 새벽에 일어나 라벤라를 교체하고, 검을 갈고,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고, 검은 종 주막에 돌아와 잠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유 없는 3년.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있으면 발렌한테 잡혀."
"……맞아."
리온이 일어섰다. 마른 과일 봉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카엘."
"뭐."
"금화 500은 포기하는 거야?"
카엘이 피식 웃었다.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랜만이었다. 이 방에서 웃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금화 때문에 간 게 아니잖아."
"알아. 그래서 걱정이야."
리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장난이 아닌 톤. 금색 눈이 카엘의 왼손을 봤다. 소매 아래에서 맥박치고 있는 은빛을. 5년 동안 리온은 카엘의 곁에 있었다. 정보상과 용병. 그 사이에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친구라고 하기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동료라고 하기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리온이 문을 열었다.
"새벽에 서문. 늦지 마."
문이 닫혔다. 리온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도리안의 발소리보다 가벼웠다. 가죽 부츠 바닥이 얇아서 나는 특유의 찰칵거리는 소리.
---
카엘은 혼자 남았다.
방을 둘러봤다. 삐걱거리는 마루. 갈라진 벽. 얼룩진 천장. 3년간의 방. 세라가 죽은 후 관성으로 살아온 공간. 이 방에 카엘의 것은 거의 없었다. 검 하나. 단검 하나. 라벤라 주머니. 옷 두 벌. 숫돌 하나. 그게 전부였다. 벽에 걸린 것도, 탁자에 놓인 것도 없었다. 3년을 살았는데 방에 남긴 흔적이 이것뿐이었다. 살았다기보다 머물렀다는 표현이 맞았다.
탁자 위에 빈 에일 잔이 있었다. 도리안이 두고 간 것. 자기 잔도 비어 있었다. 한 모금밖에 안 마셨는데 에일이 증발한 건 아니었다. 잔을 기울인 기억이 없었다. 도리안과 얘기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마신 모양이었다.
허리춤에서 라벤라 주머니를 꺼냈다. 코에 대봤다.
향이 났다. 라벤더와 캐모마일. 엘시가 레칸에서 채운 약초.
세라.
"간다."
묘비에 대고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방의 창문에서 동쪽을 보면 헤벨라 공동묘지 방향이었다. 성벽 바깥, 완만한 언덕 위, 오래된 참나무 아래. 세라의 묘비. '봄의 끝자락에 잠들다.'
"당분간 못 올 것 같아."
대답은 없었다. 당연히. 묘비는 대답하지 않는다. 3년간 대답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카엘은 주머니를 심장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 밤. 이 방에서의. 가죽 주머니의 무게가 가슴 위에 느껴졌다. 가볍고 작은 무게. 하지만 그 무게가 가장 무거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왼손의 은빛이 어둠 속에서 맥박치고 있었다. 심장 박동에 맞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천장에 은색 빛이 희미하게 번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탁자 위 빈 에일 잔에 은빛이 반사되어 작은 점이 됐다.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막 뒷마당에 사는 검은 고양이. 3년 동안 밤마다 울었다. 오늘도 울고 있었다. 내일도 울겠지. 카엘이 없어도.
세라라면 뭐라고 했을까. 떠나는 걸 말렸을까. 세라는 군의관이었다. 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다. 도망치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죽는 것은 더 싫어했다. 살아 있어야 할 일을 한다고. 살아 있어야 싸울 수 있다고. 그게 세라의 말이었다.
살아 있어야.
그 말이 떠난 뒤에도 남아서, 3년 동안 카엘을 살게 했다. 이유가 아니라 관성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관성이든 뭐든, 살아 있었다. 아직.
새벽이 밝기 전에 일어났다. 검을 허리에 차고, 단검을 등에 꽂고, 방을 나왔다. 문을 잠그지 않았다. 열쇠를 카운터 위에 놓았다. 노파는 아직 자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하크라드 서문. 새벽.
하늘이 회색이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색. 성벽 위의 횃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새벽의 마지막 불. 서문 앞 돌바닥이 이슬에 젖어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내쉬면 희미하게 입김이 보였다.
리온이 서 있었다. 가죽 배낭을 메고 마른 과일을 씹고 있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이미 먹고 있었다. 이 남자는 언제나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넬이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옆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성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는 건 아니었다. 카엘의 발소리에 눈을 떴으니까.
카엘이 다가갔다.
"셋이야?"
"셋이지."
리온이 과일을 삼키며 말했다. 목소리에 장난기가 돌아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하는 심각한 대화와 새벽 공기 속에서 하는 대화는 무게가 달랐다. 리온은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었다.
"엘시랑 나머지는?"
"레칸에서 치료 중이야. 볼턴 교수가 한 달은 움직이지 못해. 하르만 박사가 돌봐주기로 했어."
"엘시는?"
"종아리 상처. 봉합은 끝났는데 며칠은 더 쉬어야 해. 지팡이 짚고 돌아다니긴 하더라. 마을 약초밭 기웃거리고 있었어. 대단한 애야, 다친 발로."
리온이 마른 과일을 하나 더 꺼내 입에 넣으며 덧붙였다.
"너 걱정하더라. '카엘 씨 괜찮으세요'를 세 번은 물었어."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엘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근깨가 있는 웃음.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면서도 라벤라를 구해온 사람. 미끼로 쓸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유적에 들어간 사람.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의외였다. 3년간 다른 사람의 안위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세 사람이 서문을 빠져나갔다. 문지기 병사가 졸고 있었다. 새벽 교대 전. 검문 강화는 내일부터. 오늘은 아직 열려 있었다.
새벽안개가 성벽 아래를 감싸고 있었다. 안개 사이로 남쪽 길이 보였다.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 카엘이 3년 전 처음 하크라드에 왔을 때 걸었던 길과 같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도착이었고, 지금은 출발이었다. 방향이 같아도 의미가 달랐다.
"카엘."
리온이 걸으면서 말했다. 과일을 다 먹고 손가락에 묻은 즙을 바지에 닦으며.
"뭐."
"이번에는 금화가 없어."
"알아."
"목적지도 없어."
"알아."
"계획도 없어."
"알아."
리온이 피식 웃었다. 이 대화의 패턴. 리온이 길게 말하고 카엘이 짧게 대답하는 것. 5년간 변하지 않은 리듬이었다.
"그래도 가는 거지?"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왼손의 은빛이 새벽빛 속에서 맥박치고 있었다. 소매를 내려 가렸지만 손등까지는 가릴 수 없었다. 은빛 실선이 맥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유적이 없어도. 결정이 없어도. 아렌이 없어도.
혼자서.
넬이 앞서 걸었다.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넬에게 하크라드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떠나는 데 아무 감정이 필요 없는, 거쳐 간 도시 하나일 뿐. 넬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리온이 구해온 사람이었고, 도끼를 쓸 줄 알았고, 말이 적었다. 그게 넬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세 사람이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크라드의 성벽이 뒤에서 안개에 묻히고 있었다. 회색 돌담이 회색 안개 속으로.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카엘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 방에서 이미 돌아봤다. 창문 너머로 헤벨라 공동묘지 방향을.
걸었다. 흙길 위에 세 사람의 발자국이 찍혔다. 새벽 이슬에 젖은 흙이 부츠 밑에서 눌렸다.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이 보일 것이다. 하크라드에서 이어진 발자국.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남쪽 하늘 끝이 붉어지고 있었다. 해가 뜨려는 것이다. 칼레온 영지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일출이 될 수도 있었다.
왼손의 은빛이 새벽빛과 섞였다. 은색과 붉은색이 피부 위에서 겹쳤다.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왼손도. 발걸음도.

'넉두리, 번뇌 > Play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크로노 리프트 연재 안내 (0) | 2026.05.04 |
|---|---|
| 크로노리프트 10화 사냥개들 #01 (0) | 2026.05.03 |
| 크로노리프트 9화 돌아온 자리 #01 (0) | 2026.05.01 |
| 크로노리프트 8화 사냥개 #02 (0) | 2026.04.30 |
| 크로노리프트 8화 사냥개 #01 (0)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