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자, 하늘.
크로노리프트 7화 미끼 #01 본문
통로를 걸으며 리온이 말했다. 전부.
목소리는 낮았다. 청백색 빛이 리온의 금색 눈에 반사되며 흔들렸다. 코벤의 어깨 부상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 소거법으로 엘시를 미끼 자리에 몰아넣었다는 것. 석상 앞에서 가장 먼저 반대편 통로로 뛰어들었다는 것. 양팔을 자유롭게 쓰면서. 리온의 말은 빠르고 정확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톤을 눌렀지만, 손가락이 허벅지 옆에서 쉴 새 없이 두드려지고 있었다.
카엘은 걸으며 들었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한 번도.
리온이 말을 끝냈다.
"카엘?"
"들었어."
"그게 끝이야?"
"발렌의 부하답네."
카엘은 앞을 보며 걸었다. 더 말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검 자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습관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검을 확인하는 손.
리온은 5년을 같이 다녔다. 카엘이 감정이 없을 때와 감정을 죽이고 있을 때의 차이를 알았다. 어깨의 긴장. 턱 근육의 움직임. 걸음의 간격이 2센티미터 좁아지는 것. 지금은 후자였다.
엘시가 두 사람 사이에서 절뚝거리며 걸었다. 오른쪽 다리를 딛을 때마다 숨이 걸렸다. 리온이 감아준 천이 종아리에 감겨 있었고, 천의 가장자리가 어둡게 젖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물 자국이 마른 뺨이 청백색 빛에 비쳤다. 먼지와 섞인 줄기가 턱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카엘 씨."
엘시가 말했다. 조심스러운 톤이었다.
"뭐."
"코벤 씨를 다시 만나면 어떡해요?"
카엘은 잠깐 생각했다. 세 걸음 정도의 침묵.
"죽이진 않을 거야."
"그건 다행이네요."
"죽일 가치가 없으니까."
엘시가 고개를 돌려 카엘을 봤다. 카엘은 앞만 보고 있었다. 눈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니, 담고 있지 않으려고 하는 눈이었다.
"……차갑네요."
"원래 그래."
리온이 끼어들었다. 의도적으로 톤을 가볍게 올렸다. 무거운 공기를 깨려는 리온의 방식이었다.
"차가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거야. 맞지, 카엘? 코벤 한 명 때문에 감정 쓰기 귀찮은 거지."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리온은 그걸 봤다. 눈 깜빡임도 잡아내는 시력이 잡아낸 움직임.
세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카엘의 발밑에서 청백색 빛이 3미터 앞까지 비추고, 지나간 자리는 다시 어둠에 잠겼다. 통로의 벽에 새겨진 문양이 카엘이 지날 때마다 잠깐 반짝이다 꺼졌다. 마치 숨을 쉬다 멈추는 것처럼. 엘시의 절뚝거리는 발소리, 리온의 가벼운 발소리, 카엘의 고른 발소리. 세 가지 리듬이 돌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아까."
엘시가 말했다. 걸으면서.
"네?"
리온이 봤다.
"석상이 저한테 올 때, 리온 씨가 다리 사이로 빠져나갔잖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리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 안 했어. 몸이 먼저 움직였어."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지. 근데 무서운 거 따지면 여기 있는 거 자체가 미친 짓이야. 금화 500 때문에 목숨 거는 것도."
리온이 카엘을 흘겨봤다. 카엘은 앞만 보고 있었다. 리온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금화도 발렌 돈이잖아."
리온이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씁쓸한 톤이었다.
---
통로가 넓어졌다.
천장이 높아지고 벽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카엘의 빛이 넓은 범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올라온 은빛이 벽면을 타고 번지며 천장까지 닿았다. 통로가 아니라 긴 복도였다. 양쪽 벽에 문이 나란히 있었다. 다섯 개. 전부 닫혀 있었다. 문마다 돌 표면에 서로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만 결정은 전부 꺼져 있었다.
"뭐야, 이건."
리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금색 눈이 각 문의 문양을 훑었다. 벽에 귀를 가져다 대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카엘이 첫 번째 문 앞에 섰다. 왼손을 대봤다. 차가운 돌의 표면. 반응 없음.
두 번째. 반응 없음.
세 번째.
왼손이 미세하게 따뜻해졌다. 손바닥 중앙에서 시작된 열기가 손가락 끝으로 퍼졌다. 문양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열리지 않았다. 에너지가 부족했다. 원형 홀에서 결정을 만지기 전의 감각과 같았다. 문이 반응은 하지만, 열 만큼의 힘이 없는 것.
카엘이 손을 떼자 문양이 다시 꺼졌다.
"카엘. 이쪽."
리온이 복도 끝에서 불렀다.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 있었다.
복도의 끝에 여섯 번째 문이 있었다. 다른 문보다 컸다. 폭이 3미터. 높이도 나머지 문의 두 배는 됐다. 문 위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동심원. 원형 홀 바닥의 문양과 같은 패턴. 가운데 원에서 바깥으로 여섯 겹의 원이 퍼져나가는 형태.
카엘이 다가가자 문양이 반응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깜빡이는 게 아니라, 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빛났다. 꺼질 듯 말 듯한 촛불 같은 빛이었다. 동심원의 가장 안쪽 원부터 빛이 살아났고, 카엘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자 두 번째 원이 따라 밝아졌다.
엘시가 벽에 기대서서 숨을 고르며 지켜봤다.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눈을 떼지 못했다. 유적이 카엘에게만 반응하는 것. 처음 석문에서 봤을 때도 놀라웠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열릴지도 몰라."
카엘이 왼손을 대봤다.
은빛이 맥박쳤다. 손등의 실선에서 출발한 빛이 손바닥 전체로 퍼졌다. 문양의 빛이 강해졌다. 은빛의 맥박에 맞춰 동심원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차례로 밝아졌다.
그르르.
문이 3센티미터쯤 밀렸다. 그리고 멈췄다. 은빛이 사그라들었고, 문양의 빛도 함께 꺼졌다.
"아."
엘시가 한숨을 쉬었다.
카엘은 문의 틈에 손가락을 넣어봤다. 틈이 있었다. 3센티미터.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큼.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차갑고 신선한 바람. 유적 안의 무겁고 건조한 공기와 전혀 달랐다. 피부 위에 닿는 감촉이 살아 있었다.
"바깥 공기야."
리온이 말했다. 반엘프의 코가 읽었다. 흙 냄새. 풀 냄새. 수분을 머금은 먼지. 바깥 세계의 것.
"이 문 너머가 출구야?"
"적어도 바깥과 연결된 곳이야."
카엘은 문의 틈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밀었다. 어깨와 팔에 온몸의 힘을 실었다. 발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돌문이 1센티미터 더 밀렸다.
"리온."
"알았어."
리온이 옆에 서서 같이 밀었다. 네 개의 손이 틈에 걸려 같은 방향으로 힘을 줬다. 엘시가 벽면에 등을 대고 한쪽 다리로 버티며 문을 밀었다. 세 사람의 힘이 한 점으로 모였다.
문이 움직였다. 천천히.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돌 소리. 오래된 돌과 돌이 천 년 만에 갈리는 소리. 5센티미터, 10센티미터, 30센티미터.
사람 하나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카엘이 먼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깨를 비틀어 좁은 간격을 통과했다.
문 너머는 경사로였다. 위를 향해. 천장에 결정이 박혀 있었지만 전부 죽어 있었다. 어둠뿐이었다. 카엘의 빛이 경사로를 비추며 위쪽으로 번져갔다. 벽면의 문양이 카엘의 발에 반응하며 미약하게 점등됐다가 지나가면 다시 꺼졌다. 경사로의 벽은 통로보다 거칠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 표면. 유적의 장식적인 부분이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이었다.
리온이 틈으로 따라 들어왔다. 엘시를 먼저 넣은 뒤 자신이 들어왔다. 엘시가 들어올 때 리온이 허리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다친 다리가 틈에 걸리지 않도록.
경사로 끝에 빛이 보였다. 청백색이 아닌 빛. 누런빛. 자연광. 빛의 색깔이 유적 안에서 본 어떤 것과도 달랐다. 따뜻한 색이었다.
"출구다."
카엘이 말했다. 두 글자. 하지만 그 두 글자에 세 사람의 긴장이 풀렸다. 엘시가 긴 숨을 내쉬었다. 리온이 입꼬리를 올렸다.
---
코벤과 볼턴은 반대편 통로를 걷고 있었다.
빛이 없었다. 카엘의 은빛도, 엘시의 발광 이끼도 이쪽에는 없었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코벤이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손바닥에 닿는 돌의 질감이 유일한 방향 감각이었다. 벽이 끊기면 갈림길이고, 벽이 계속되면 직진. 그것만으로 걸었다.
아니, 코벤이 걷고 있었다. 볼턴은 끌려가고 있었다. 코벤이 볼턴의 팔을 잡고 앞으로 당기고 있었다. 코벤의 어깨는 멀쩡했다. 처음부터. 찢어진 외투 아래로 어깨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코벤. 좀 천천히."
볼턴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발이 바닥에 걸릴 때마다 비틀거렸다.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교수님."
"시간이 없다니, 뭔 소리야.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잖아."
"앞으로 가는 겁니다. 서 있으면 죽습니다."
코벤의 목소리에 정중함이 남아 있었다.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외투가 찢어지고 안경테가 휘어진 채 어둠 속을 걷는 이 남자의 얼굴에, 리온이 없으면 드러나는 것이 있었다. 관찰자가 없을 때의 맨얼굴.
조급함.
코벤은 살아 나가야 했다. 보고서를 가지고. 발렌에게. 그것이 이 탐사의 본래 목적이었다. 금화 500은 미끼가 아니라 투자였다. 발렌이 원한 것은 정보였고, 코벤은 충분히 얻었다.
카엘이라는 변수. 석문을 여는 능력. 유적이 반응하는 에너지. 에테르라는 이름. 하르만 박사가 벽화에서 해독한 고대 문자.
서류 가방 안에 전부 있었다. 무너지는 통로에서도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가방. 가죽 끈이 손가락에 파고든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코벤."
"네."
"아까 엘시한테 한 짓."
코벤이 잠깐 멈췄다. 돌아봤다.
볼턴의 늙은 눈이 어둠 속에서 코벤을 보고 있었다. 입이 아니라 눈이 말하고 있었다.
"저는 최선의 판단을 한 겁니다."
"최선? 스물셋짜리 애를 미끼로 쓴 게 최선이야?"
"교수님은 뛸 수 없었고, 저는 어깨를——"
"거짓말 하지 마."
볼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짜증이 아니었다. 60년을 살아온 사람의 단정이었다. 여러 번 속아본 적 있고, 더 많이 속여본 적 있는 사람의 목소리.
"니 어깨가 다쳤으면 나를 이렇게 끌고 걷지 못해. 아까 통로로 뛰어들 때도 양팔을 다 썼지. 다 봤어."
코벤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변명을 더 꺼낼 수도 있었다. 꺼내지 않았다. 들킨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을까.
"교수님."
"뭐."
"여기서 나가려면 저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볼턴은 코벤을 봤다. 코벤의 안경 너머 눈. 차분했다. 위협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이 어둠 속에서 혼자 걸을 수 없는 늙은 마법사에게, 코벤은 유일한 동행이었다. 아무리 치가 떨려도. 아무리 주먹이 떨려도. 마법이 있었다면 이 남자의 발목에 쇠사슬을 감아 꿇어앉힐 수 있었다. 여기에 마법은 없었다. 떠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주먹만 있었다.
"……가자."
볼턴이 이를 갈며 말했다.
코벤이 다시 걸었다. 볼턴이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하나는 빠르고, 하나는 질질 끌렸다.
볼턴은 코벤의 등을 보며 걸었다. 찢어진 외투. 먼지가 묻은 어깨. 서류 가방의 가죽 끈이 코벤의 손에서 당겨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가방을 놓지 않는 손. 엘시를 미끼로 넣은 것도, 볼턴을 끌고 가는 것도, 모두 저 가방 속의 것을 발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코벤의 전부였다. 사람이 아니라 가방이 우선인 남자.
볼턴은 60년을 살았다. 이런 인간을 여럿 봤다. 결국 혼자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 어둠 속에서 그 앎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

통로가 흔들렸다.
카엘이 그걸 먼저 느꼈다. 발밑의 미세한 진동. 경사로의 돌 표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돌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아주 멀리서. 유적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
"리온."
"느꼈어."
리온이 귀를 세웠다.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감았다. 반엘프의 청각이 음원을 추적했다.
"유적이 흔들려.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와."
경사로를 올라가고 있었다. 카엘이 엘시의 왼팔을, 리온이 오른팔을 잡고. 엘시는 오른발을 땅에 딛지 못했다. 왼발만으로 경사를 올랐다. 종아리의 천에서 피가 스며나와 발목까지 흘렀다. 발자국마다 붉은 자국이 남았다. 엘시는 걸었다. 입을 꽉 다문 채.
두 번째 진동.
이번에는 강했다. 발바닥을 통해 무릎까지 올라오는 충격.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결정 파편이 바닥에 박혔다. 날카로운 소리가 벽을 울렸다.
"무너지는 거야?"
엘시가 물었다.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빨리 걸었다. 엘시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결정이 죽었다. 원형 홀의 에테르 결정이. 그것이 이 유적의 동력원이었다면, 동력이 끊긴 유적은 버틸 수 없다. 천 년을 유지한 구조물이 동력을 잃으면.
무너진다.
"뛰어."
카엘이 말했다.
"다리가——"
"내가 끌어."
카엘이 엘시를 등에 업었다. 한 동작이었다. 무릎을 낮추고, 엘시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허벅지 아래를 잡아 올렸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업던 동작과 같았다. 손이 기억하는 순서.
"죄, 죄송해요——"
"말하지 마. 혀 깨물어."
등에서 체온이 전해졌다. 작고 가벼운 몸. 로브 천의 거친 감촉. 먼지와 피 냄새가 섞인 천. 어깨를 쥐는 손가락이 떨렸다. 공포와 통증이 섞인 떨림.
세라의 온도가 스쳤다. 따뜻했다. 군의관의 손. 붕대를 감아주던 손. 카엘의 상처 위에 올려놓던 손바닥의 감촉.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눈 색깔도. 갈색이었나. 호박색이었나. 3년이 지나면서 기억의 경계가 흐려졌다. 남은 것은 온도뿐이었다.
카엘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생각을 지웠다. 리온이 옆에서 같이 뛰었다. 반엘프의 다리가 경사로를 가볍게 차고 올라갔다. 리온이 앞서 달리며 경사로의 장애물을 확인했다. 떨어진 돌. 갈라진 바닥. 리온의 눈이 카엘보다 먼저 읽고 경로를 잡았다.
경사로가 가팔라졌다. 카엘의 부츠가 미끄러졌다. 돌 표면에 쌓인 먼지가 마찰을 죽였다. 엘시의 손이 카엘의 어깨를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쇄골에 파고들었다.
세 번째 진동. 네 번째. 간격이 좁아졌다. 뒤쪽에서 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경사로 아래쪽에서. 가까워졌다. 올라오는 것보다 무너지는 것이 빨랐다.
빛이 보였다. 누런빛. 자연광.
출구였다.
경사로 끝에 틈이 있었다. 바위 사이.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수 있는 틈. 바깥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먼지 속에서 빛줄기가 사선으로 떨어졌다.
카엘이 먼저 빠져나갔다. 엘시를 등에 업은 채. 바위틈을 몸을 비틀어 지나갔다. 돌이 등을 긁었다. 엘시의 다리가 바위에 스쳤고 엘시가 숨을 삼켰다.
바깥이었다.
균열지대의 하늘이 보였다. 흐린 하늘.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먼지가 섞인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유적 안에서 말랐던 입술이 바람에 갈라지는 감촉이 있었다. 발밑에 갈라진 대지. 마른 흙과 바위. 유적 안의 무겁고 전기적인 공기와 전혀 다른 것이 폐를 채웠다. 차갑고 날카롭고 살아 있는 공기. 엘시가 카엘의 등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리온이 뒤따라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바위에서 10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달렸다. 뒤를 돌아봤다.
바위틈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회색 분진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내부가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돌이 돌을 삼키는 소리.
카엘은 엘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허벅지 근육이 경련했다.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머지는."
카엘이 말했다.
리온이 바위틈을 봤다.
"코벤이랑 볼턴 교수가 반대편으로 갔어. 넬이랑 하르만 박사는 어딘지도 몰라."
진동이 계속됐다. 바위 위에서 돌이 떨어졌다. 작은 돌이 먼저. 그다음 주먹만 한 돌. 바위틈이 좁아졌다.
"들어가야 해."
카엘이 일어섰다.
"뭐?"
"아직 안에 있어. 네 명이."
"카엘, 무너지고 있다고."
"알아."
카엘이 검을 확인했다. 허리춤에 있었다. 검집의 무게가 허리에 걸렸다. 왼손의 은빛이 맥박쳤다. 쓸모없는 빛. 안에서는 길을 밝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10분."
카엘이 말했다.
"10분 안에 안 나오면 가."
"개소리."
리온이 말했다. 장난기가 없는 목소리였다.
"정보상은 칼을 안 잡잖아. 엘시 봐야 할 사람이 필요해."
리온이 입을 다물었다. 엘시를 봤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엘시. 종아리에서 피가 흘렀다. 얼굴이 창백했다. 입술이 보라색을 띠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졌다. 지혈을 다시 해야 했다. 리온은 다시 카엘을 봤다. 카엘의 눈에는 이미 결정이 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눈이었다.
5년이었다. 이 눈을 5년간 봐왔다. 카엘이 이 눈을 하면 뭘 해도 안 바뀐다는 것을 리온은 알았다.
카엘은 바위틈을 향해 걸었다.
"카엘."
리온이 불렀다.
카엘이 멈추지 않았다.
"죽으면 내가 무덤에 라벤라 안 놔줄 거야."
카엘이 멈췄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이 은색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향도 안 나는 걸 뭐하러."
리온이 카엘의 뒷모습을 봤다. 은색 머리카락. 넓지 않은 어깨. 검집이 허리에서 흔들렸다. 무너지는 유적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등. 5년간 이 등을 봐왔다. 언제나 이렇게 혼자 들어갔다. 혼자 돌아왔다.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삼켰다. 카엘의 발밑에서 빛이 번졌다. 약하게. 유적이 꺼져갔다. 벽면의 문양이 반응하긴 했지만 1미터 앞까지만 비추고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카엘은 경사로를 내려갔다.
무너지는 유적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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