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자, 하늘.
크로노리프트 3화 균열 #02 본문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다.
마차 두 대가 북쪽으로 향했다. 하르만 박사와 볼턴이 마차 안에 탔고, 나머지는 걸었다.
반나절이 지나자 풍경이 달라졌다.
나무가 이상했다.
줄기가 뒤틀려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그루가. 보이지 않는 손이 줄기를 잡고 비틀어 짜낸 것처럼. 가지가 땅을 향해 자란 나무도 있었다. 뿌리가 하늘을 향한 것도.
일행이 멈춰 섰다.
"이건 뭐야."
넬이 처음으로 긴 문장을 말했다.
하르만 박사가 마차에서 내려 나무를 관찰했다.
"기형이에요. 하지만 자연적인 기형이 아니야. 이건…… 한 그루가 아니라 이 구간 전체가 영향을 받은 거예요."
"무슨 영향?"
코벤이 물었다.
"모릅니다.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어요."
엘시가 나무를 만져보려다 손을 뗐다. 표면이 정상이 아니었다. 한쪽은 수십 년 된 거친 껍질이고, 바로 옆은 갓 난 묘목의 매끈한 표면이었다. 같은 나무에.
"나이가 달라요. 이쪽이랑 저쪽이. 같은 나무인데 부위마다 나이가 다른 것처럼 보여요."
엘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이 안 돼."
볼턴이 말했다.
맞았다. 말이 안 됐다. 그런데 눈앞에 있었다.
카엘은 뒤틀린 나무를 지나치며 왼손을 봤다. 손등이 따뜻했다. 어제 숲에서 잎사귀가 찢어졌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관련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몰랐다. 몸이 반응했다. 뭔가에.
오후가 되자 지형이 완전히 변했다.
풀이 사라졌다. 땅이 갈라졌다. 균열이 지표를 가로질렀다. 균열 사이에서 미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청백색.
그리고 바위가 떠 있었다.
주먹만 한 돌 하나가 땅에서 30센티미터쯤 떠서 천천히 회전했다.
일행 전원이 멈춰 섰다.
"……뭐야 저거."
엘시가 숨을 삼켰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떠 있는 돌. 중력을 무시하는 돌. 마법이라면 마나가 감지돼야 했다.
엘시가 마나 측정기를 꺼냈다. 수정이 빙글빙글 돌더니 멈췄다.
"마나 수치가 0이에요."
"뭐?"
볼턴이 측정기를 빼앗았다. 얼굴이 굳었다.
"마나가 없어. 이 구간 전체에."
"마나 없이 돌이 떠 있다고?"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볼턴이 목소리를 높였다. 측정기를 두드렸다.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코벤이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10년 전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기존 마나 측정 장비로 감지 불가.' 같은 종류의 현상으로 보입니다."
"같은 종류라는 게 뭔데? 뭔지 아는 사람이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카엘은 떠 있는 바위를 봤다. 왼손이 뜨거웠다. 심장이 빨라졌다. 돌이 뛰는 것과 자기 심장이 뛰는 것이 비슷한 리듬이라는 걸 느꼈다.
---

해가 기울었다.
한 시간을 더 들어가자 바닥에 돌이 깔려 있었다. 자연석이 아닌,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판. 이끼와 흙에 덮여 있었지만 틈새로 보이는 표면은 매끄러웠다. 천 년이 넘는 세월에도 마모되지 않은 돌. 부츠 밑창으로 흙길과는 다른 단단함이 올라왔다.
하르만 박사가 무릎을 꿇었다. 석판 표면의 흙을 손으로 쓸어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흥분이었다. 공포가 아니라.
"대균열 이전의 고대 포장도예요. 약 1,200년에서 1,100년 전 사이."
"길이 있었다는 건."
카엘이 말했다.
"건물이 아니라 도시가 있었을 겁니다. 이 규모의 포장도는 도시 내부에서만 만듭니다."
박사의 눈이 빛났다. 학자의 흥분. 카엘은 그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존중은 했다. 무언가에 열정을 가진 사람은 적어도 뒷통수를 치지 않는다.
석판길을 따라 30분을 더 걸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앞쪽에 절벽이 보였다. 석판길은 그 절벽을 향해 곧장 이어졌다.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높이 10미터. 폭 7미터. 흑회색 돌. 표면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원, 삼각형, 직선, 곡선. 규칙적이지만 해독 불가능한 패턴. 문양 사이사이에 청백색 결정이 박혀 있었다. 죽은 것처럼 탁한 빛. 유리구슬이 돌 속에 박혀 멍하게 빛을 품고만 있는 것처럼.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석문은 그런 종류의 침묵을 강요했다.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존재감 때문이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버틴 물건이 내뿜는 무게.
코벤이 하르만 박사를 봤다.
"열 수 있습니까?"
박사가 석문을 관찰했다. 문양의 패턴을 따라가며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뭔가를 세는 것 같았다.
"물리적 구조물이라기보다 에너지 차단막에 가까워요. 결정체가 에너지원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결정이 죽어 있어요."
볼턴이 손을 뻗어 마법을 시도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나가 없는 구간이니까.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떨어졌다. 입술을 깨물었다.
"……열 방법이 없어."
코벤의 표정이 굳었다. 처음으로 계산이 어긋난 얼굴이었다.
카엘은 석문을 올려다봤다.
왼손이 타고 있었다. '따뜻한' 수준이 아니었다. 화상을 입는 것처럼 뜨거웠다. 심장이 흉곽을 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빨라졌다. 시야가 좁아졌다. 석문만 보였다. 그 외의 것들이 흐려졌다. 소리가 멀어졌다. 리온의 목소리, 엘시의 중얼거림, 바람 소리, 전부.
무서웠다.
다리가 움직였다.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노르비스에서 적의 칼을 피했을 때와 같았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의식은 나중에 따라왔다. 왼발, 오른발. 석문을 향해. 멈추려 했다. 멈추고 싶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카엘? 뭐 하는 거야?"
리온이 불렀다. 목소리에 긴장이 섞여 있었다.
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감각이 왼손과 석문 사이에 집중돼 있었다.
석문 앞에 섰다. 돌의 표면이 눈앞에 왔다. 문양의 홈은 가까이서 보면 손가락 한 마디 깊이였다. 결정이 그 홈 사이에 박혀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완전히 죽어 있지는 않았다. 아주 깊은 곳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빛이 잔류해 있었다. 심장이 간신히 뛰는 것처럼.
오른손이 올라갔다. 이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었다.
"카엘 씨, 석문에 함부로——"
코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카엘의 손이 석문에 닿았다.
차가웠다. 천 년의 냉기. 손바닥 전체에 얼음을 누른 것 같았다. 그 아래, 돌의 깊은 곳에서 열이 올라왔다.
왼손 등이 폭발했다.
은빛이 피부 아래에서 터져 나왔다. 손등, 손목, 팔뚝, 어깨. 혈관을 따라 은백색 빛이 번졌다. 외투 소매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왔고, 카엘의 눈동자가 순간 은빛으로 물들었다.
"뭐——!"
카엘 자신이 가장 놀랐다.
석문의 결정들이 점등됐다. 죽어 있던 청백색 결정이 하나씩 깨어났다.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물이 도랑을 타고 흐르듯 빛이 문양의 홈을 채웠다. 결정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맥박. 카엘의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이었다.
석문 전체가 발광했다.
그르르르르.
지축을 울리는 소리. 발밑의 석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석문이 갈라졌다. 중앙에서부터. 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양쪽으로 벌어졌다. 먼지가 쏟아졌다. 안쪽에서 차갑고 오래된 공기가 밀려왔다. 마른 돌과 정체된 시간의 냄새.
카엘은 손을 떼며 뒤로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쪽 무릎이 꺾였다. 리온이 달려와 카엘을 붙잡았다. 카엘의 팔을 잡은 순간, 리온은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뜨겁다는 걸 느꼈다.
"괜찮아?!"
카엘은 자기 왼손을 봤다. 은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팔 전체가 저렸다. 손가락을 쥐었다 펴봤다. 감각이 돌아오는 데 수초가 걸렸다.
"……몰라."
목소리가 떨렸다. 스스로도 들릴 만큼.
"뭐가 몰라?"
"내가 뭘 한 건지 몰라."
침묵이 흘렀다.
일행 전원이 카엘을 보고 있었다. 엘시가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양피지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는데 줍지 않았다. 볼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60년 마법을 써온 석좌교수가 마나 없이 돌문을 열어젖힌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하르만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잡았다. 펜을 들었지만 뭘 적어야 할지 모르는 손이었다.
넬은 도끼를 뽑아 들고 있었다. 카엘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석문 안쪽을 향했다. 위협의 방향을 읽은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았다.
코벤의 얼굴에 당혹이 떠 있었다. 입술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이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뭡니까."
코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당신, 대체 뭘 한 겁니까."
카엘은 일어서려 했다. 리온이 부축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에 힘을 주자 겨우 섰다.
"모르겠어. 진짜로."
솔직한 대답이었다.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손이 멋대로 닿았다. 빛이 멋대로 터졌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그 과정의 어느 것도 카엘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카엘은 자기 몸이 무서웠다.
열린 석문 안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유적의 내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등 뒤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두려움. 경계. 경이. 뒤섞인 눈들.
돌아설 수 있었다. 하지만 세라의 눈 색깔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떠올리려 했다. 갈색이었나. 호박색이었나. 3년 전에는 눈을 감으면 선명했다. 지금은 윤곽만 남았다. 기억이 사라지고 있었다. 라벤라 향이 사라진 것처럼. 머리카락이 변하는 것처럼.
답은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카엘은 석문 안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넉두리, 번뇌 > Play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크로노리프트 4화 각성의 시작 #02 (1) | 2026.04.22 |
|---|---|
| 크로노리프트 4화 각성의 시작 #01 (2) | 2026.04.21 |
| 크로노리프트 3화 균열 #01 (0) | 2026.04.19 |
| 크로노리프트 2화 멈춘 것들 #02 (1) | 2026.04.18 |
| 크로노리프트 2화 멈춘 것들 #01 (2) | 2026.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