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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박지성.. 그리고 손흥민

가온아 2025. 8. 1. 09:00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한국 축구의 전설적 발자취

오랜만에 북런던 더비(?) 승리를 축하하며..

얼마만의 북런던 더비(?)에서의 승리인가!! 최근 재계약과 아시아 투어로 관심받고 있는 손흥민!! 오늘 경기 승리를 축하한다!! 기념으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주요 영웅 세 명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한국 축구의 전설적 발자취

스포츠 인사이트 · 2025년 7월 31일

서문: 시대를 초월한 세 개의 별

한국 축구의 역사를 관통하는 단 세 명의 이름을 꼽으라면,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겠는가? 아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세 개의 별이 동시에 떠오를 것이다. 척박한 땅을 개척한 선구자, 세계의 중심에서 편견을 깬 심장, 그리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아이콘. 차범근, 박지성, 그리고 손흥민. 이들의 이름은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각 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한 족적이자, 한국 축구의 진화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한 명은 불가능의 벽을 허물었고, 다른 한 명은 그 길을 넓고 단단하게 다졌으며, 마지막 한 명은 그 길 위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손차박' 논쟁이라 불리는 이 행복한 비교는, 결국 한국 축구가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제, 세 전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한국 축구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 보자.

1. 차범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차붐' 신드롬

유럽의 문을 연 선구자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게 유럽 축구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프로 리그조차 없던 시절,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차범근은 그 불가능에 도전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의 유럽행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과도 같았다. 그는 한국 축구라는 배의 돛을 올려, 유럽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간 최초의 선장이었다.

기록이 증명하는 전설

차범근은 단순한 '도전자'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배자'가 되었다. '차붐(Cha Boom)'이라는 별명은 그의 폭발적인 위력을 상징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04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번의 UEFA컵 우승을 차지한 것은 아시아 선수 최초의 위업이었다. 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 98골이라는 기록은 페널티킥 골이 단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경이롭다. 이 기록은 10년간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으로 남으며, 그가 프란츠 베켄바워,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같은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음을 증명한다.

"차범근의 성공은 동시대 축구인들에게 거대한 충격이었다. 그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워낙 엄청나다 보니 국내 대표선수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 주간스포츠 1979년 12월 19일자 기사 인용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차범근의 성공은 바다 건너 한국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그의 활약은 국내 선수들에게 더 큰 무대에 대한 열망과 동기를 부여했고, 축구협회와 기업들에게는 프로 리그 출범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비록 그의 해외 진출로 인해 특정 구단의 창단 계획이 무산되는 등 작은 파장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그의 존재는 한국 축구의 프로화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그는 한 명의 선수가 어떻게 한 나라의 스포츠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다.

2. 박지성: 세계의 편견을 넘어선 '두 개의 심장'

2002년 월드컵, 새로운 시대의 서막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포르투갈전의 그림 같은 결승골은 그의 축구 인생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운명을 바꾼 한 장면이었다. 그는 월드컵을 통해 증명된 '황금세대'의 상징이었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뢰 아래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할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차범근이 홀로 길을 냈다면, 박지성은 잘 닦인 신작로를 통해 세계로 달려 나갈 준비를 마친 새로운 세대의 대표 주자였다.

프리미어리그를 누빈 헌신의 아이콘

PSV 에인트호번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입성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곳에서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는 기술적이지만 신체적으로 약하고 전술 이해도가 낮다'는 유럽의 뿌리 깊은 편견을 산산조각 냈다. '두 개의 심장', '산소탱크'라는 별명처럼 지치지 않는 활동량과 엄청난 수비 가담, 그리고 감독의 전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행하는 능력은 그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빅게임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그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으며, 성실함과 헌신만으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팀'을 위한 영웅, 리더십의 재정의

박지성의 위대함은 개인 기록 너머에 있다. 그는 언제나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수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묵묵히 동료를 위해 뛰었고, 이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전 세대 리더들과 달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은퇴 후에는 JS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유소년 축구 발전에 힘쓰고,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등 그의 영향력은 그라운드를 훌쩍 넘어섰다.

3. 손흥민: 세계를 열광시킨 '월드클래스'의 탄생

개인의 힘으로 역사를 쓰다

손흥민의 시대에 이르러, 한국 축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다. 그는 팀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으로 세계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선수가 되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FIFA 푸스카스상 수상, 발롱도르 후보 선정 등 그의 개인 커리어는 차범근과 박지성도 밟아보지 못한 영역이다. 그는 더 이상 '아시아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인정받는다. 그의 양발을 가리지 않는 슈팅과 폭발적인 스피드는 전 세계 모든 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단순한 선수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손흥민의 영향력은 경기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 아이콘'이자 '글로벌 브랜드'다. 그의 존재는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의 아시아 시장 가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한국 내에서의 상업적 가치는 구단의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다. 이는 한국 축구의 브랜드 가치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전 세계 팬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긍정적으로 각인시키는 외교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차범근이 가능성을 열고 박지성이 신뢰를 쌓았다면, 손흥민은 그 위에 '매력'과 '가치'를 더했다.

현재진행형 전설, 미래를 향한 기대감

손흥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때로는 골잡이로, 때로는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멘토이자 조력자로 역할을 바꾸며 진화하고 있다. 그의 발끝에서 또 어떤 역사가 쓰일지, 그가 이끄는 한국 축구가 어떤 새로운 높이에 도달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한국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다.

결론: 세 전설이 그린 한국 축구의 미래

차범근은 황무지에 길을 냈고, 박지성은 그 길 위에 단단한 다리를 놓았으며, 손흥민은 그 다리를 건너 화려한 도시를 세웠다. 이 세 명의 전설은 단절된 개인이 아니라, '개척-정착-융성'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 해외 진출사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주인공들이다.

차범근이 있었기에 박지성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었고, 박지성이 있었기에 손흥민의 신화가 가능했다. 이들의 논쟁은 누가 더 위대한가를 가리는 소모적인 다툼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시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국 축구를 한 단계씩 성장시킨 세 영웅의 위업을 기리고, 그들이 함께 쌓아 올린 역사의 두께를 확인하는 축제와 같다. 이들의 발자취는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꿈의 지도를 그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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